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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선조]'임진왜란'으로 나라와 백성을 버린 왕, 선조의 업적

 

[한국사-선조]'임진왜란'으로 나라와 백성을 버린 왕, 선조의 업적

 

1. 생애: 1552년~1608년


2. 재위기간: 1567년 ~ 1608년


3. 휘: 이균, 이연


4. 묘호: 선조


5. 신상정보

[JTBC 드라마 마녀보감-선조]
[KBS1 드라마 징비록]
[KBS1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선조]
[KBS2 드라마 왕의얼굴-선조]
[MBC 드라마 허준-선조]

출생일: 1552년 11월 26일
출생지: 조선 한성부 인달방 도정궁
사망일: 1608년 3월 16일 (55세)
매장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스 동구릉
부친: 덕흥대원군
모친: 하동부대부인
배우자: 의인왕후(박씨), 인목왕후(김씨)
자녀: 25명(왕자 14명, 공주 11명)


6.출생 및 즉위 과정

 

1) 1552년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손자이자 제13대 왕 명종의 이복조카로 태어남.
2)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으로 인종, 명종과는 이복형제 사이.
3) 제13대왕 명종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조선 최초 방계혈통 출신으로 제 14대왕 선조로 즉위.
4) 선조의 이름이 '이균'이었으나 당시 명나라 황제 이름이 '주익균'이었기 때문에 '이연'으로 개명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최초 방계출신 왕
선조는 중종의 서손이며 조선 명족의 이복조카이고, 덕흥대원군 이초와 하동부대부인 정씨의 아들로서, 조선 최조의 서자 출신 임금이며, 최초의 방계혈통의 임금이기도 하다.


2) 붕당정치의 발생
붕당정치란 과거에 관료들이 서로 파벌을 이루어 정권을 다투는 일을 의미한다. 조선초기부부터 훈구파의 탄입인 '사화'를 극복하고 사림파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사림파의 정계 장악 후 관직에 오를 자격자는 많아졌으나 관직은 한정되어 있기에 당파의 분열이 초래하였다. 이러한 붕당의 대립은 1575년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김효원과 심의경의 반목에서 비롯되었다.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은 허엽이 영수로 있었고,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박순이 영수가 되어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동인이 우세하여 선인을 공격하였으나, 동인은 다시 서인에 대한 강온 양론으로 갈라져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분리된다.


3) 정여립 모반사건
동인 출신이었던 정여립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사교 모임인 대동계를 조직했다.
그러나 대동계는 역모의 오해를 뒤집어쓰고, 이를 기회로 많은 동인들이 서인에 의해 축출되었다. 이후로도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는 등, 조정의 내부의 붕당은 점점 심화되었다.


4) 임진왜란
선조는 1590년 황윤길.김성일.허성 등을 '통신사'로 파견하여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자신의 천하 야욕을 이루기 위해 대륙침략을 계획하고 있었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병선을 준비하고 있기에 멀지 않아 전쟁이 발발하리라 보고한 반면, '동인' 김성일은 침입할 조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당사 조정과 대신들은 '동인' 김성일의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2년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생한다.


5) 왕중의 명필
선조는 조선의 27명 왕 중에서 명필 중의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선조의 딸 정명공주가 쓴 '화정'이라는 두글자는 아버지 선조의 필체와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 높이 평가받고있다.
즉 선조는 학문을 좋아하고 영특하였기에 후공의 소생이었음에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국가의 리더로 책임감이 부족하여 조선왕조 최악의 군주로 평가받고있다.


6) 이몽학의 난
임진왜란 직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조선과 일본은 잠시 휴전 상태가 되었다. 이 떄를 노리고 왕족 서얼인 '이몽학'은 의병을 모집한다는 핑계로 장정들을 끌어모으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몽학의 난'은 홍주 목사 '홍가신'에 의해 진압되기는 했으나 선조는 이몽학의 난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7) 정유재란
1594년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조총과 탄환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1597년 일본은 명과 진행되던 강화회담이 깨지자 다시 조선을 침임하며 '정유재란'이 발생한다.
상기 '정유재란'은 이순인 이끄는 조선 수군의 승리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일본군이 퇴각함으로써 7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