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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효공왕] 후고구려, 나주전투, 후고구려 건국 당시의 신라왕

[한국사-효공왕] 후고구려, 나주전투, 후고구려 건국 당시의 신라왕


1. 생애: 생년미상~912년


2. 재위 기간: 897년~912년


3. 휘: 김요


4. 묘호: 없음, 시호: 효공, 왕호: 왕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태조왕건, 효공왕]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한 효공왕릉]
[KBS1 드라마 태조왕건,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KBS1 드라마 태조왕건, 견훤의 후백제 건국]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서라벌
사망일: 912년
매장지: 효공왕릉(경주시 배반동)
부친: 헌강왕
모친: 의명황태후 김씨
배우자: 왕비 박씨
자녀: 기록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의 제49대 헌강왕과 의명황태후 김씨 사이에서 서자로 탄생.
2) 진성여왕 9년, 895년 태자로 책봉.
3) 897년 여름 15세 남짓의 나이로 전성여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으며 신라 52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탄생의 배경
49대 헌강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자색이 뛰어난 한 여자를 만났는데, 뒤에 궁궐을 빠져나가 그 여자와 야합하여 태어난 아들이다.
뒤에 이 사실을 안 진성여왕에 의해 헌강왕의 혈육이라 하여 895년에 태자로 봉해지고, 뒤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2)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효공왕 재위 시 신라의 형세는 왕실의 권위가 떨어져서 지방에서 일어난 궁예와 견훤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우선, 지금의 청주나 충주 이북지역은 완전히 궁예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궁예는 901년에 스스로 왕이라 칭했고, 904년에 백관을 설치했으며 그다음 해에는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
신라는 907년에 서남쪽에서 점점 세력을 키운 견훤에게 일선군 이남의 10여 성을 빼앗겼다.


3) 왕건의 활약
903년 궁예의 부하 왕건은 병선을 이끌고 금성 등 10여 군현을 공취하였다.
이후, 서해의 해상권은 대체로 왕건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909년에 왕건은 진도군과 고이도성을 공취했으며, 견훤이 중국 오월에 보낸 사자를 나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910년에 왕건은 나주를 다시 뺏기 위해 공격해온 견훤군을 대파하였다.
서해상에서 왕건의 전승은 그가 다가올 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4) 주색에 빠진 왕
효공왕은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지방의 성주들에게 함부로 나가서 싸우지 말고 성을 굳게 지키라는 지시만 전달하였다.
게다가 효공왕은 애첩에게 빠져서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은영은 왕에게 간언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911년 그 천첩을 죽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