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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경애왕] 후삼국, 견훤, 포석정의 최후를 맞이한 왕

[한국사-경애왕] 후삼국, 견훤, 포석정의 최후를 맞이한 왕

 

 

1. 생애: 생년 미상~927년


2. 재위 기간: 924년~927년


3. 휘: 박위응


4. 묘호: 없음, 시호: 경애, 왕호: 왕


5. 신상정보

 

[KBS2드라마 왕건, 경애왕]
[KBS2드라마 왕건, 경애왕]

 

 

[경주시 배동에 위치한 경애왕릉]
[경애왕이 연회를 즐긴 포석정]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서라벌
사망일: 927년
매장지: 경애왕릉(경주시 배동)
부친: 신덕왕
모친: 의성왕후 김씨
배우자: 기록 없음
자녀: 기록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53대 신덕왕과 49대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의 아들로 탄생.
2) 경명왕이 왕위에 오른 뒤 이찬의 직위에 있으면서 상대등으로 임명됨.
3) 924년 경명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신라 55대 왕으로 즉위함.


4) 주요 업적 및 삶
1) 후삼국의 패권다툼
경애왕 때 후삼국의 패권다툼은 이미 왕건 쪽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925년 고울부장군 능문이 항복하였고, 927년 강주의 왕봉규가 관할하는 돌산 등이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2) 왕건과 견훤
왕건과 견훤은 잠시 싸움을 그치고 강화하였는데, 견훤이 보낸 질자인 진호가 고려에서 죽자 견훤은 926년 다시 출병하여 고려를 공격하였다.


3) 선승 모임의 시초
경애왕 때 황룡사에 백좌경설을 설치하고 선승 300여 명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이것을 백좌통설선교라 부르며, 대규모 선승 모임의 시초가 되었다.


4) 포석정에서의 최후
927년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여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궁궐을 노략질하면서 경순왕을 세우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