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한국사

[한국사-헌종] 오가작통법으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 왕, 헌종 이환의 업적

 

[한국사-헌종] 오가작통법으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 왕, 헌종 이환의 업적

 

1. 생애: 1827년~1849년


2. 재위 기간: 1834년 ~ 1849년


3. 휘: 이환


4. 묘호: 헌종


5. 신상정보

[MBC 드라마 간택-헌종]
[MBC 드라마 간택-헌종]
[영화 흥부-헌종]
[영화 흥부-헌종]

출생일: 1827년 09월 08일
출생지: 조선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
사망일: 1849년 07월 25일 (21세)
매장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 동구릉
부친: 문조
모친: 신정왕후
배우자: 효현왕후, 효정왕후
자녀: 1명 (1녀)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1827년 음력 7월 18일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효명세자(익종)과 세자빈 조씨의 아들로 태어남.
2) 1827년 태어남과 동시에 왕세손으로 책봉.
3) 1830년(순조 30년)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동궁에 책봉되어 왕위 계승자가 됨.
4) 1834년 순조가 승하하자 12월 13일 8살의 나이로 조선의 제24대 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모반 사건(왕권의 추락)
1836년 충청도에 있던 남응중이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를 임금으로 추대하고자 했다.
1844년에는 노론이었으나 몰락하여 중인이 된 민진용이 이원덕 등과 역시 은언군의 손자를 임금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번의 모반 사건은 모두 별다른 정치적 세력도 없는 중인과 몰락 양반이 일으킨 것으로 이 시기에는 누구나 왕권에 도전할 수 있었을 만큼 왕권이 약화되었다 볼 수 있다.


2) 천주교 박해
성리학적 가르침을 받고 자라난 헌종 역시 천주교에 대한 배격 논리에 별다른 부인을 하지 않았다.
기해박해가 있고 나서 5년 뒤, 한국교회사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자들이 조선으로 입국했다. 입국 후 김대건 신부는 선교를 펼치다가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 이를 병오박해라고 부른다.


3) 풍양조씨 세도정치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는 풍양 조씨 가문의 사람이다. 순조 때 처가였던 안동 김씨의 세력이 강했다면, 헌종이 즉위했을 당시에는 외적인 풍양 조씨 가문의 권세가 높았다.


4) 오가작통법
'오가작통'은 조선시대 다섯 집을 한통으로 묶은 행정자치조직이었으나, 후기에의 오가작통법은 결고 행정적 기능을 원활히 발휘하지 못하였다.
헌조 즉위 당시에는 천주교와 동학의 금압과 교도의 색출을 위하여 일부 집권층에 의하여 강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오작적통을 통해 이웃에 연대책임을 물어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였다.


5) 글쓰기를 좋아한 왕
순조는 재위 기간동안 <열성지장>, <동국사략>, <문원보불>, <동국문헌비고>, <삼조보감> 등을 찬수하게 하고, 각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으며 글씨를 잘 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