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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다루왕] 신라의 탈해 이사금과 공방전을 치른 왕, 다루왕의 업적]

 

 

 
[한국사-다루왕] 신라의 탈해 이사금과 공방전을 치른 왕, 다루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77년


2. 재위기간: 28년~77년


3. 휘: 부여다루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화순 대곡리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 출처: 위키페디아]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77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온조왕
모친: 자료 없음
배우자: 자료 없음
자녀: 기루왕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원자이며, 성은 부여씨.(삼국사기에는 온조왕의 장남으로 기록, 삼국유사에는 온조왕의 차남으로 기록되어 있음)
3) 10년(온조왕 28년) 태자로 책봉.
4) 28년 2월 부친인 온조왕이 승하하면서 백제의 제2대 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벼농사 장려
33년 위례성 남부 지방에까지 벼농사를 장려하였다. 상기 벼농사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물이라는 큰 자산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백제는 철기가 보급되면서 농경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농업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 생산력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2) 양조 금지
38년 흉년으로 백성의 살림이 곤란하자 전국적으로 양조를 금지시키고 지방을 순시하며 빈민을 구호했다.


 

 

3) 신라 '탈해 이사금'과의 결투

<삼국사기>에는 63년 낭자 곡성(현재 청주)까지 영토를 넓히고 신라의 왕 '탈해 이사금'에게 사신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허나 당시의 백제 국력으로 보아 믿기 어려운 기록으로 판단된다.


4) 우곡성
58년 말갈족 격퇴를 위해 우곡성을 축조하였다. 온조왕때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말갈족의 침입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대한 방안으로 우곡성을 축조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