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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산상왕] 형사취수제를 실천하고 수도를 환도성으로 천도한 왕

[한국사-산상왕] 형사취수제를 실천하고 수도를 환도성으로 천도한 왕

 

1. 생애: 생년미상~227년


2. 재위기간: 197년~227년


3. 휘: 고연우, 이이모


4. 묘호: 없음, 시호: 산상왕


5. 신상정보

[채널A 천일야사-산상왕]
[채널A 천일야사-산상왕]
[채널A 천일야사-산상왕]
[KBS1 역사저널 그날-산상왕에 대한 기록]

 

출생일: 확인불가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197년
매장지: 산상릉(북경 북쪽 발해진 부근으로 비정)
부친: 신대왕
모친: 확인불가
배우자: 왕후 우씨, 소후 후녀
자녀: 1남


6.출생 및 즉위 과정
1) 8대 신대왕의 셋째아들이며 9대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생년은 확인불가.
2) 197년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자 뒤를 이어 고구려 제 10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형사취수제 대표 사례
산상왕(연우)과 우씨의 결합은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해 산다는 취수혼의 구체적 실례로서 유명하다.
부여와 고구려 및 북방 여러 민족에게 나타나는 취수혼은 형제 동류의 친족들 사이에 강한 공동체적 유대를 존속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족장위가 형제상속 되고 있었으며, 초기의 왕위계승 역시 형제상속 형태였다는 점에서 고구려 초기에는 형사취수제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발기의 모반
197년 형인 발기가 본인이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해 소노부 세력과 더불어 모반하였다.
3일 동안 산상왕이 농성하는 가운데 고구려 국내에서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발기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뒤이에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위세를 떨치고 있던 공손씨의 군대까지 끌어들여 수도를 공격하자, 동생 계수를 시켜 이를 물리쳤고 발기는 자살하였다.


3) 환도성 수도 천도
198년에 환도성을 쌓았고 203년에는 국상 을파소가 죽어 고우루를 후임 국상으로 삼았다.
209년에는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4) 후한과 위나라 조조
217년에는 후한 평주의 하요가 위나라 조조 군에 쫓겨 1천여 가를 거느리고 투항하였으며 왕은 책성에 이들을 안치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구려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