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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봉상왕] 모용외 침략을 받고 국상 창조리를 죽이려한 폭군

[한국사-봉상왕] 모용외 침략을 받고 국상 창조리를 죽이려한 폭군 

 

 


1. 생애: 생년미상~300년


2. 재위기간: 292년~300년


3. 휘: 고상부, 고삽시루


4. 묘호: 없음, 시호: 봉상왕, 치갈왕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근초고왕-고구려 장군 고노자]
[봉상왕을 몰아내려는 국상 창조리]
[채널A 천일야사-봉상왕]
[채널A 천일야사 봉상왕]

 


출생일: 확인불가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00년
매장지: 봉산원
부친: 서천왕
모친: 왕후 우씨
배우자: 확인불가
자녀: 2남 이상


6.출생 및 즉위 과정
1) 13대 서천왕의 첫째 아들로 탄생하였으며 어려서 부터 교만하고 방탕한 것으로 기록.
2) 292년 서천왕이 죽자 뒤를 이어 고구려 제 14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왕권 강화를 위해 가족을 시해
왕위에 오른 봉상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숙신을 격파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던 숙부 안국군 달가를 음모로 살해하였다. 
또한 293년에는 동생 고돌고에게 역모죄를 씌워 자살하게 하였으며 도망친 고돌고의 아들 고을불을 추격하게 하는 등 자신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들을 제거하였다.


2) 대규모 궁실 증축
봉상왕은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계속된 흉년에도 불구하고 298년과 300년에 궁실을 대규모로 증축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다링강 하류 방면에서 일어나 세력을 확장해 가던 선비 모용부의 모용외와 충돌하였다.


3) 모용외 침입 및 서천왕 무덤 도굴
293년 음력 8월에 모용외가 침입하였다. 
이에 봉상왕은 신성으로 대피하려 하였으나 적이 추격해 왔다. 이때 신성의 재인 북부 소형 고노자가 5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왕을 맞이하러 나왔다가 모용외의 군을 만나 격파하였다. 
봉상왕은 고노자를 대형으로 삼고 곡림을 식읍으로 주었다. 296년 음력 8월 모용외가 다시 침입하여 고국원에 이르러 서천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돌아갔다.


4) 폭정에 따른 두 아들과 자살
300년에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는 가운데 왕이 궁실을 수리하려고 백성을 징발하려 하자, 국상 창조리가 부당함을 간했으나 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창조리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창조리는 다른 신하들과 왕을 폐위할 것을 모의하였다. 
봉상왕은 사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두 아들과 함께 자살한 뒤 봉산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