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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구수왕] 전통 온조계의 왕실교체 빌미를 만든 왕, 구수왕의 업적

[한국사-구수왕] 전통 온조계의 왕실교체 빌미를 만든 왕, 구수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214년


2. 재위기간: 214년~234년


3. 휘: 부여구수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신라 장산성-경북 경산 일대]
[백제 6대왕 구수왕 당시 백제 영토]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234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초고왕

모친: 자료없음

배우자: 자료없음

자녀: 2남 이상


6.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 제5대왕 초고왕의 맏아들로 출생.

3) 214년(초고왕 49년)에 아버지 초고왕이 승하하면서 백제의 제6대 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복잡한 연대

구수왕은 '귀수왕'이라고도 한다. 당시 백제는 아직 연맹체를 이루고 있던 때이므로, 연대가 정확하다 해도 국가 체제 성립 후의 재위와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제5대 초고왕의 맏아들이며, 제7대 사반왕이 그의 맏아들이고, 제11대 비류왕이 둘째 아들이라 전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연대상 문제가 있어 사실상 믿기가 어렵다.


2) 신라 내해 이사금과의 전투

218년 구수왕이 직접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장산성(현재 경북 경산 일대)을 포위하자 신라 내해 이사금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여 백제군이 크게 패하였다.


3) 말갈과의 전투

229년 말갈은 우곡지역으로 들어와 주민들을 약탈했는데 구수왕은 정예군 300명을 보냈으나 매복해 있던 말갈군에 크게 패하였다.


4) 온조계 출신 왕의 변화기

구수왕은 '온조계' 왕족 출신으로, 구수왕대를 경과하는 동안 온조계 왕족에 큰 병동이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구수왕이 죽은 뒤 아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 없어서 초고왕의 아우인 고이왕이 즉위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고이왕이 초고왕의 아우라고 한 것은 연대상 모순되며, 고이왕과 구수왕은 온조계 왕실 내의 서로 다른 지파 출신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서 구수왕 치세에는 말갈.신라 등의 전투로 점철되어 있다. 대부분의 전투는 백제의 참패로 끝나고 구수왕 대 말에는 혹심한 가뭄이나 기근 등의 재난까지 겹친 것으로 나온다.

연맹 체제하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구수왕이 속한 초고왕계 세력의 몰락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