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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양원왕] 돌궐의 공격을 받고 거칠부 세력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긴 왕

[한국사-양원왕] 돌궐의 공격을 받고 거칠부 세력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긴 왕

 

 


1. 생애: 생년 미상~559년


2. 재위기간: 545년~559년


3. 휘: 고평성


4. 묘호: 양원왕, 시호: 양강상호왕, 양강왕 


5. 신상정보

 

[KBS1 역사저널 그날-양원왕 당시 고구려의 위기]
[STB상생방송-돌궐세력]

 

 

 

 

[기마민족 돌궐]
[양원왕 당시 동북아시아 지도]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559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안원왕
모친: 중부인
배우자: 확인불가
자녀: 1남


6.출생 및 즉위 과정
1) 고구려 23대 안원왕의 첫째 아들로 탄생
2) 533년 안원왕 3년에 태자로 책봉.
2) 545년 부친 안원왕이 승하하면서 뒤를 이어 고구려 24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추군과 세군 세력의 충돌
양원왕의 즉위과정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안원왕이 죽은 뒤 두 왕비가 각각 자기 소생의 왕자를 왕으로 세우려 하여 두 왕자를 지지하는 세력들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 충돌과정에서 양원왕을 밀던 추군이 다른 왕자를 지지하던 세군에게 승리함으로써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왕의 전제적 권한이 크게 도전받아 왕권이 점차 약화되어갔다.


2) 지배세력간 분쟁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을 보면 551년에 거칠부를 만난 고구려의 고승 혜량이 나라에 정란이 있어 멸망이 멀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되어 있어 지배세력 간의 분쟁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혜량이 거칠부를 만나서 망명의 뜻을 표시하고 몇 년 뒤 거칠부가 이끈 신라군이 한강 유역을 공격해 왔을 때 거칠부를 따라 신라로 이주해 갔다. 
혜량의 경우는 양원왕 즉위 이후 여전히 지배귀족들 사이의 분쟁으로 인한 혼란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그러한 혼란이 혜량이 주석하고 있던 지방에까지 확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3) 간주리 모반
557년에 환도성의 간주리가 모반을 꾀했는데 이 역시 고구려 내부의 동요를 보여준다. 
간주리로 대표되는 환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세력과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세력의 대립이 분출된 것이다. 
이 또한 양원왕 즉위와 관련된 귀족세력 간의 분쟁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 국제관계의 불안
양원왕 재임 당시에는 왕권의 동요와 더불어 국제관계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북아시아의 신흥 유목 기마민족인 돌궐이 551년에 고구려의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장군 고흘령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들을 크게 격파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고구려는 매우 큰 국력소모를 겪었다. 돌궐과의 대치상태 속에서 551년에는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