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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진성여왕] 원종과애노의난, 양길, 시무10조, 견훤, 적고적이 난립했던 여왕

[한국사-진성여왕] 원종과애노의난, 양길, 시무10조, 견훤, 적고적이 난립했던 여왕


1. 생애: 생년미상~897년


2. 재위 기간: 887년~897년


3. 휘: 김만


4. 묘호: 없음, 시호: 진성, 왕호: 여왕


5. 신상정보


[KBS2 태조왕권, 진성여왕]
[채널A 천일야사, 진성여왕]
[tvN 알쓸신잡3, 시무10조를 주장한 최치원]

[진성여왕 재임 당시 난립한 적고적, 출처: 게임 거상]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서라벌
사망일: 897년
매장지: 화장 후 산골하여 확인불가
부친: 경문왕
모친: 문의왕후 김씨
배우자: 혜성대왕 김위홍 외 이상
자녀: 1남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의 제48대 경문왕과 47대 헌안왕의 딸인 문의왕후 김씨 사이에서 딸로 탄생.
2) 887년 정강왕의 죽기 전 유언을 바탕으로 신라 제51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즉위 초 민심수습
진성여왕은 즉위 직후 주·군에 1년의 조세를 면제해 주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 수습에 노력하였다.


2) 김위홍의 죽음
887년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김위홍이 죽자 정치 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다.
이와 함께 대야주에 은거하던 왕거인이 국왕을 비판하는 일이 생기고, 888년부터는 주·군으로부터 세금이 들어오지 않아서 국고가 비게 되었다.
이에 관리를 각지에 보내 세금을 독촉했고, 이를 계기로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하기 시작하였다.


3) 원종과 애노의 난
888년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이를 토벌하지 못하였다. 이 난을 계기로 계속해서 적당의 난이 일어났다.
891년에 북원의 적수 양길이 부하인 궁예를 동쪽으로 원정시켜 명주까지 함락시켰다.


4) 견훤 후백제 건국
892년 완산주에서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자 무주 동남쪽의 군현이 모두 그에게 항복하였다.


5) 궁예의 정복 활동
895년에는 영주를 손에 넣은 궁예가 다시 저족·생천을 거쳐 한주·철원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라의 실질적인 통치 영역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 그치고, 전 국토는 대부분 적당이나 지방 호족세력의 휘하에 들어갔다.


6) 적고적
896년에는 이른바 적고적이 경주의 서부 모량리까지 진출해 민가를 약탈하여 수도의 안위조차 불안해졌다.


7) 최치원의 시무10조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최치원은 894년에 시무10조를 제시하였다.
이 제의는 받아들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진골귀족의 반대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최치원의 개혁안은 육두품 중심의 유교적 정치이념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했으므로 진골귀족의 이익과는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개혁안이 시대적 한계로 인해 시행되지 못함으로써 신라의 붕괴를 막을 수 없었고 후삼국이 정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