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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태조]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업적

 

[한국사-태조]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업적

 

1. 생애: 1335년~1408년


2. : 1392년 8월 5일 ~ 1398년 10월 14일


3. 휘: 이성계 -> 이단


4. 묘호: 태조


5. 신상정보

[SBS드라마 옥룡이 나르샤-이성계]
[태조 이성계 어진, 출처: 위키페디아]
[태조 이성계 어진, 출처: 위키페디아]

 

출생일: 1335년 10월 11일
출생지: 고려 동북면 화령군 영흥 흑석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금야군 순녕면 흑석리)
사망일: 1408년 5월 24일 (72세)
매장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부친: 화조
모친: 의혜왕후
배우자: 신의왕후, 신덕왕후
자녀: 총 13명 (11남 2녀)


6.출생 및 즉위 과정


1) 1335년 함경도 동북면 출생.
2) 공민왕 5년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면서 아버지 이자춘의 뒤를 이어 동북면의 실력자로 성장.
3) '홍건적'을 격퇴화고 '왜구토벌(황산대첩)'을 기반으로 중앙정치 시작.
4) '원명교체기', '요동정벌'에서 외화도 회군을 하며 정권 장악.
5)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을 몰아내고 새 왕조 '조선'을 개국.


7. 주요 업적

 

1) 황산대첩

1380년(고려 우왕 6년) 왜구가 금강 하구에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와서 3도(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에 약탈화 방화를 일삼았다.
이때 황산에 진을 치면서 모인 왜구를 이성계가 여러 번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 끝이 승리한 전투이다. 당시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이고 병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한다.
황산대첩은 고려시대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 격파에서 가장 특별할 만한 것으로 이후 왜구의 침입을 쇠퇴시키고 이성계가 '중앙정치'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2) 홍건족 토벌

홍건족은 원나라 군대에 쫓기면서 퇴로를 한반도를 잡아 1359년(공민왕 8년)부터 고려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1362년(공민왕 10년) 이성계는 사병 2,000명을 이끌고 선봉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등 큰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이로써 중국 직례지에서 일어나 만주에 진출한 홍건적은 고려에 대한 2차의 침공으로 오히려 고려에 의해 전멸하게 되었고, 고려도 막대한 타격을 입어 국운의 쇠퇴를 가져오게 된다.


3) 조선건국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한다. 조선건국은 망해가는 고려의 세대교체(권문세족->신진사대부)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체제정비(과전법, 8도 개편)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로써 고려말기 힘이 약한 왕권을 강화 시키며 불교 폐단 혁파와 동시 법치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4) 한양천도

새왕조를 연 이성계는 새로운 도읍지를 논의하게 되었고, 1394년 한양(서울)로 도읍지를 천도한다.(태조 3년)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은 이성계를 반대하는 세력의 기반이 남아있고, 풍수지리리를 비롯한 조세미의 수상운공, 군사지리적 조건 등을 고려해 한양으로 옮겼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을 비롯해 한양건설을 추진했으며 세종대에는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