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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연산군] 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녹수의 남자, 연산군의 업적

 

[한국사-연산군] 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녹수의 남자, 연산군의 업적

 

1. 생애: 1476년~1506년


2. 재위기간: 1496년 12월 ~ 1506년 9월


3. 휘: 이융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MBC 드라마 역적-연산군]
[영화 간신-연산군]
[KBS1 드라마 왕과비-연산군]
[영화 왕의남자-연산군]

출생일: 1476년 11월 23일
출생지: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
사망일: 1506년 11월 20일 (29세)
매장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묘
부친: 성종 이혈
모친: 폐비 윤씨
배우자: 폐비 신씨
자녀: 총 6명 (4남 2녀)


6.출생 및 즉위 과정

 

1) 1476년 조선 제 9대 임금 성종의 적정자로 탄생.
2) 1478년 연산군이 3세가 되던 해 어머니 윤씨가 폐서인이 되고 6세에 사약을 먹고 죽음.
3) 1483년 세자로 책봉되고 1494년 19세의 나이로 조선의 제 10대 임금으로 즉위.
4) 연산군은 '중종반란'으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종묘에서 제사를 지나지 않고 '묘호'가 없음.


7. 주요 업적 및 삶

 

1) 정치개혁
왜구의 약탈을 대응하기 위해 '비융사'를 설치하고 상설 회의 개최와 병기 개량을 추진했다.
또한 즉위 초반에는 <국조보감>등 여러 서적을 완성시켰으며 '사가독서'를 부활했다. 또한 <경상우도지도> <국조보감>,<둥국명가집>을 간행했고 <역대제왕시문잡저>,<속국조보감>,<여지승람>을 완성하는 등 정치 관련 다수의 업적을 이룩하였다.


2) 무오사화
1498년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의 '계유정난'을 비난한 한 것이라는 '유자광'의 참소에 따라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를 일망타진 한다.
이미 사망한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목을 베는 '부관참시형'을 집행했다.
이 무오사화를 바탕으로 연산군은 훈구파 세력과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3) 갑자사화
1504년 '폐비윤씨' 사태를 주도했던 성종의 두 후궁을 비롯하여 당시 관련자인 훈구파.사림파 대신들을 살아 있으면 처형하고 이미 사망한자는 부관참시했다. 이 일련의 사건을 '갑자사화'라 한다.
야사에 의하면 연산군은 '폐비윤씨' 사태를 몰게한 할머니 '인수대비'를 찾아가 강하게 밀치고 들이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인수대비는 사망했다.


4) 폐륜 및 음란행위
인수대비가 죽고 삼년상 대신 '이일역월제'라는 단상제를 당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원각사 등을 주색장으로 만들고, 성종의 본산인 흥천사도 마구간으로 바꾸었다.
천명의 기생을 만들어 주색을 일삼았으며 성균관의 대성전에 동물을 풀어 사냥을 하기도 했다.


5) 장녹수에 대한 사랑
장녹수는 기록상 그다지 미인이 아닌 평범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30대의 얼굴이 마치 16세와 같을 정도로 엄청난 동안으로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기생에서 종3품 숙용으로 봉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