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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아신왕]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왜국과 연합을 시도한 임금

[한국사-아신왕]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왜국과 연합을 시도한 임금

 

 

1. 생애: 생년 미상~405년


2. 재위 기간: 392년~405년


3. 휘: 부여아신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아신왕]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아신왕]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아신왕]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405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침류왕
모친: 진씨
배우자: 해씨
자녀: 2남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 15대 왕 침류왕과 진씨의 장남으로 탄생
3) 392년 백제 제17대 왕으로 즉위.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자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하였다고 기록.
<일본서기>에는 아신이 군사를 일으켜 진사왕을 제거하고 즉위했다고 기록.


7. 주요 업적 및 삶

1) 고구려 남침
아신왕 치세의 가장 큰 문제는 광개토왕이 이끄는 고구려의 남침이었다.
아신왕의 즉위 직전인 392년과 396년에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반격을 하고자 거듭 노력을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2) 관미성 공력
즉위한 직후인 393년 아신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장군 진무를 좌장으로 삼고 군사를 맡겼다. 진무는 1만의 병력으로 관미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이 굳게 지키고 보급이 여의치 않아 퇴각하였다.
394년, 395년에도 수곡성과 패수에서 고구려군과 싸웠으나 빈번이 패배하였으며 이후에도 군사를 정비하고 쌍현성을 쌓는 등 전시 체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3) 고구려 정벌 시도
398년 고구려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천문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중지하였고 이듬해에도 정벌을 위해 군사를 징발하여, 계속되는 군역으로 백성들이 신라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아 인구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4) 가야. 왜 연합군
397년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400년에는 백제가 가야. 왜군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지만 신라를 구하러 온 광개토왕에게 참패하였다.
403년 다시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404년에는 왜군과 연합해 고구려의 대방지역을 공격하였으나, 그때마다 패해 달아났다. 즉, 왜와 동맹을 맺게 된 것도 고구려 세력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