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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근구수왕] 동진과의 외교로 고구려와 백제 동맹에 맞선 군주, 근구수왕의 업적

[한국사-근구수왕] 동진과의 외교로 고구려와 백제 동맹에 맞선 군주, 근구수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384년


2. 재위 기간: 375년~384년


3. 휘: 부여수(이칭: 구수, 귀수, 근귀수, 귀류, 구소)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근초고왕-근구수왕]
[KBS1 드라마 근초고왕-근구수왕]
[KBS1 드라마 근초고왕-근구수왕]
[근구수왕과 아이부인 가계도]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84년 음력 4월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근초고왕
모친: 진씨
배우자: 아이부인
자녀: 2남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 13대 왕 근초고왕과 어머니 진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탄생.
3) 375년 11월 아버지 근초고왕이 승하하자 백제의 제14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태자 당시 활약상

부왕인 근초고왕을 도와 정복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369년 치양성 전투에서는 고구려군을 격파해 5,000여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특히 그 당시 치양성 전투에서는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다시 귀순해 온 사기의 군사기밀 제보로 고구려군을 대파하였다.
371년 겨울에는 근초고왕과 함께 3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력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했다.


2) 진고도
근구수왕은 '진고도'를 내신좌평으로 임명해 정사를 맡겼다. <삼국사기>에는 진고도에 대하여 '왕구'라 기록되어있다. 이를 '왕의 장인'인 혹은 '왕의 외삼촌'으로 해석하는 학설들이 존재한다.

 


3) 제1차 여제전쟁
376년 고구려 소수림왕이 11월 백제 변경을 공력해왔다. 근구수왕은 377년 10월 3만 명의 병사로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그 해 11월 고구려의 보복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상기후가 겹치면서 '제1차 여제전쟁'은 고구려의 대승리로 끝이 났다.


4) 동진과의 외교
근구수왕 재위 당시 고구려-신라-중국 전진 3자 동맹 외교를 바탕으로 백제를 견제하려 했기에, 근구수왕은 중국 동진과 외교관계를 맺어 이에 대응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근구수왕이 379년 봄에 동진에 사신을 보냈으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사신이 되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5) 자연재해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근구수왕대에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많았다.
379년 4월 하루 종일 흙이 비처럼 내렸다.
380년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 여름 5월에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져 깊이 다섯 장, 너비 세장이나 되었는데 삼일절만에 합쳐졌다.
382년 봄에 가뭄이 들어 6월까지 계속되었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파는 자까지 있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