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비류왕] 초고왕계의 부활을 시작한 왕, 비류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304년
2. 재위기간: 304년~344년
3. 휘: 부여비류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44년 10월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구수왕
모친: 확인불가
배우자: 왕후 해씨
자녀: 1남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삼국사기>에 백제 제6대 왕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고, 제7대 사반왕의 아우로 기록.
3) 분서왕이 죽자 그의 아들 '계'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비류가 신하들의 추대를 받고 백제의 제11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세력교체 설
<삼국사기>에는 제6대 왕 구수왕의 둘째 아들, 제7대 사반왕의 아우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혈족 관계는 '비류왕'의 재위 시기와 모순되는 면이 있다.
구수왕은 234년까지 재위하였으며, '비류왕'은 그보다 70년 뒤에 즉위하여 40년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어 연대에 무리가 나타난다. 비류왕의 즉위는 그 무렵 백제 왕실 지파들 사이의 세력 교체와 함께 이루어진게 맞다고 본다.
비류왕의 혈족 관계와 재위년 사이의 모순도 그 같은 왕실 지파 간의 세력교체에 대한 역사 서술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당시 백제 왕실은 개루왕에서 갈라진 고이왕계와 초고왕계의 두 지파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2) 초고왕계의 재 집권
책계왕과 분서왕 모두가 한군현 세력과의 분쟁에서 연달아 피살되는 사태를 당하여, 고이왕계의 세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초고 왕계인 '비류왕'의 재위는 바로 이때 이루어졌다.
즉, '비류왕'의 즉위는 초고왕계의 재집권을 뜻한다. '비류왕' 다음에 고이왕계인 분서왕이 아들 계왕이 즉위하였지만 그 재위는 2년 만에 끝나고, 다시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이 즉위하여 그 뒤 초고왕 계내에서 왕위 계승이 계속된다.
3) 애민정책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에 의하면 312년 신하를 보내 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을 살피고, 과부, 고아, 그리고 자식 없이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을 도와주었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들에게 곡식 3섬씩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4) 순탄치 않은 왕권 교체
<삼국사기>에는 비류왕의 재위 기간에 천재지변이 자주 발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잇따른 천재지변은 당시 왕권의 불안정을 의미하는데, 비류왕이 왕위에 오른 지 9년이 지나서야 시조의 묘당에서 제사를 지낸 것을 보면 비류왕의 왕위 계승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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