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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책계왕] 고구려에 대비하고자 아차성과 사성을 구축한 왕, 책계왕의 업적

[한국사-책계왕] 고구려에 대비하고자 아차성과 사성을 구축한 왕, 책계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298년


2. 재위 기간: 286년~298년


3. 휘: 부여책계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KBS1 역사스페셜-백제 비밀의문 칠지도]
[아차산성 출토 토기,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아차산성, 출처: 위키페디아]

[아차산성, 출처: 한국대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납동토성,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납동토성, 출처: 위키페디아]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298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고이왕
모친: 자료 없음
배우자: 보과
자녀: 1남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청계 또는 책체라고 불렸으며 고이왕의 맏아들로 탄생.
3) 286년(고이왕 53년) 겨울 아버지 고이왕이 승하한 후 그 뒤를 이어 백제의 제9대 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고구려 침략 방비

책계왕은 즉위와 동시에 장정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대방'이 구원병을 요청하자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도왔다. 상기 사유로 고구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아차성(서울 광장동 아차산성)'과 '사성(서울 풍납동토성)'을 쌓아 고구려의 침략을 방비하였다.


2) 신라와의 화친
선대 고이왕 때까지 오랫동안 대립해왔던 신라와 화친을 맺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3) 전투 중 사망
289년 가을 '한군(낙랑의 군대)'과 '맥인(동예로 추정)'의 침략에 맞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으나 전투 중 전사하였다. 책계왕이 죽은 뒤 아들인 분서왕이 왕위를 이었으며 장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왕릉의 위치는 확인이 불가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