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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분서왕] 낙랑이 보낸 자객에 피살당한 왕, 분서왕의 업적

[한국사-분서왕] 낙랑이 보낸 자객에 피살당한 왕, 분서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304년


2. 재위 기간: 298년~304년


3. 휘: 부여분서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낙랑군 자객과 분서왕]
[한군현 위치]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04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책계왕
모친: 보과 부인
배우자: 확인불가
자녀: 1남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책계왕과 대방의 왕녀인 보과부인의 장남으로 탄생.
3) 304년 한군현과의 전투에서 부왕인 책계왕이 승하하면서 백제의 제10대 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죄수 사면 및 동명왕 사당 제사
298년 가을에 책계왕이 한군현의 침공을 받아 전사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분서왕은 죄수들을 대규모로 사면하고, 299년에는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인 고구려 동명왕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2) 한군현 세력에 대한 강경책
분서왕도 부왕과 마찬가지로 낙락 등 한군현 세력에 대하여 강경책을 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신라본기'의 기림 이사금에 관한 기록에서는 300년 낙랑과 대방 주민들이 신라로 투항해 오자 신라가 그들을 받아들였는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 고구려는 선비족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낙랑을 공격할 여력은 없었다. 그래서 '낙랑과 대방'의 투항은 백제 분서왕의 공격으로 그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304년(분서왕 7년)에는 낙랑군의 서쪽 현을 공격하여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같은 해에 분서왕은 낙랑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3) 고이왕계 몰락
고이왕의 손자인 분서왕이 피살된 뒤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 왕계가 다시 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제11대 비류왕 다음에 분서왕의 아들 제12대 계왕이 잠시 왕위에 있었으나, 고이왕계의 몰락을 막지는 못하였다.
분서왕이 자객에게 살해된 후 계왕을 비롯한 아들들이 모두 어렸기에 제7대 사반왕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는 비류왕(초고왕계)이 왕위를 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