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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진사왕]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진 정책에 밀린 왕, 진사왕의 업적

[한국사-진사왕]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진 정책에 밀린 왕, 진사왕의 업적

 

 

 

 

1. 생애: 생년 미상~385년


2. 재위기간: 385년 11월~392년 11월


3. 휘: 부여진사 (이칭: 부여휘)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진사왕]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진사왕]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백제 관미성]
[KBS1 역사스페셜-해상교욕의 관문 관미성]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92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근구수왕
모친: 진씨
배우자: 해씨
자녀: 2남이상


6.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 14대왕 근구수왕과 진고도의 딸 아이부인의 차남으로 탄생
3) 386년 백제 제16대왕으로 즉위.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자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 하였다고 기록.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태자 아신에게 돌아가야 할 왕위를 빠앗은 것으로 기록.


7. 주요 업적 및 삶

 

1) 고구려 남진정책 대항
즉위 후 진사왕은 남진하여 내려오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386년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에서 북으로 팔곤성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을 쌓았다. 390년 달솔 진가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을 공격하여 200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2) 광개토대왕의 일전
그러나 고구려 광개토왕의 뛰어난 용병술에는 당하지 못하여 392년 석현성 등 10여 성과 한수 이북의 여러 부락이 고구려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또한 천연의 요새인 관미성(파주시 오두산성으로 추정)도 함락되었다.
이렇듯 진사왕대에는 고구려의 남진에 따른 군사적 압박으로 시종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고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다.

 


3) 암살설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은 숙부인 진사왕이 부왕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반기를 들었다. 한편 일본서기에 의하면 왜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왜에서 보낸 자각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4) 사냥을 즐긴왕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진사왕은 사냥을 즐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가모가 고구려 공격에 나선 390년 겨울에도 진사왕은 구원에서 7일 동안 사냥을 하였고, 이듬해에도 나라 서쪽의 큰 섬과 횡악의 서쪽에서 사냥을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구려가 관미성을 함락시킨 392년 겨울에도 진사왕은 구원에서 10일이 넘도록 사냥을 했고, 띁네 그곳의 행궁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