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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문주왕] 백제 수도를 한강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왕

[한국사-문주왕] 백제 수도를 한강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왕

 

 

1. 생애: 생년 미상~477년


2. 재위 기간: 475년~477년


3. 휘: 부여도


4. 묘호: '없음'


5. 신상정보

 

[EBS 문화유산코리아-문주왕]
[백제의 수도 천도 과정]

 

 

[웅진 백제기념관-문주왕]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477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개로왕
모친: 확인불가
배우자: 확인불가
자녀: 확인불가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출생은 생년 미상으로 확인불가.
2) 백제 21대 왕 비유왕의 장남으로 왕자로 있을 때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상좌평을 역임.
3) 475년 고구려군 침략에 개로왕이 죽자 뒤를 이어 백제의 제21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상좌평 역임
왕자 시절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최고 관직인 상자평을 역임하였다.
475년 9월 고구려에게 위례성이 포위되는 위기를 맞자, 동맹국인 신라에 구원을 청하러 파견되었다. 그러나 신라 구원병 1만을 얻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은 살해된 뒤였다.


2) 백제 수도 이동
문주왕은 대내외적으로 국난의 상황에서 즉위하였다. 대내적으로 개로왕대의 전제 권력 행사로 인해 야기된 지배세력 사이에서 대립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고,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한성 공격으로 야기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당시 문주왕은 상기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백제의 수도를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웅진은 지리적으로 북으로 차령산맥과 금강에 둘러싸여 있고, 동으로는 계룡산이 막고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로부터 침략을 방어해주는 천험의 요새지였다.

 

 


3) 귀족들의 내부 갈등
본거지를 잃은 왕족 부여씨나 해씨.진씨 등 부여족 계통 구귀족들의 지배권력은 남부에 토착하고 있던 사택씨.연씨 등 마한계 세력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개로왕 때의 왕권강화 및 왕족 위주의 집권체제에 억눌렸던 구귀족들의 반발로, 부여족 계통 구귀족들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난립 과정에 신.구 귀족세력들은 이해관계 여하에 따라 합종연횡 모습을 보이면서 왕권과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다.


4) 병권좌평 해구의 쿠데타
477년 문주왕은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병권좌평 해구의 쿠데타로 인해 암살을 당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