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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유리왕] 황조가를 만들고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왕

[한국사-유리왕] 황조가를 만들고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왕 

 

 

 

1. 생애: 기원전 38년~(기원후) 18년


2. 재위 기간: 기원전 19년~(기원후) 18년


3. 휘: 고유리


4. 묘호: 태종, 시호: 동명성왕, 유리명왕, 유리명효문황제


5. 신상정보

 

 

[MBC드라마 주몽-유리왕]
[MBC드라마 주몽-유리왕]
[KBS1드라마 근초고왕-유리왕]

 

 

 

 

[KBS2드라마 바람의나라-유리왕]
[KBS2드라마 바람의나라-유리왕]

 

 

출생일: 기원전 38년
출생지: 동부여
사망일: 18년
매장지: 중국 북경 유리하
부친: 해모수왕
모친: 예씨 부인
배우자: 송씨, 위씨, 하희, 치희, 극씨
자녀: 6남 1녀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유리왕은 동명성왕의 맏아들로 동부여 출신의 예씨부인의 소생으로 기원전 38년 탄생.
2) 동부여에서 태어나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와서 기원전 19년 왕태자로 책봉.
3) 기원전 19년 9월 동명성왕이 사망하면서 고구려 2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황조가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고구려의 유리왕이 지었다는 시가이다. 유리왕은 왕비 송씨가 죽자, 화희와 치희를 계실로 얻었는데 두 여자가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않자, 왕은 양곡의 동서에 두 궁을 짓고 각기 살게 하였다.
뒤에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서 7일간을 돌아오지 않은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게 되어 치희가 부끄러워 원한을 품고 도망쳐 돌아갔다.
왕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최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유리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 쉬면서 꾀꼬리가 날아 모이는 것을 보고 이 <황조가>를 지었다고 한다.

 

 


2) 국내성 도읍 변경
서기 3년에는 도읍을 졸본(홀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12년에는 중국의 왕망이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고구려 군사의 출동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한나라를 공격하자 왕망은 유리왕을 ‘하구려후’라고 비칭 하였다.


3) 정복활동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다.
기원전 6년: 부여의 대소왕이 군사 5만여 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폭설로 많은 군사를 잃고 퇴각하였다.
12년: 서기 12년에 신나라의 왕망이 흉노 정벌을 위해 고구려군을 징발하려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장수를 보내 공격하여 고구려 장수 연비를 죽이고 하구려후라 비하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신나라를 공격하였다.
13년: 부여가 침범했으나 대패시켰으며, 이듬해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았다.
18년: 두곡 이궁에서 사망했으며 두곡 동원에 장사 지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구려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