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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파사이사금] 실직국과 압독국 병합, 가야 김수로에게 도움을 받은 왕

[한국사-파사이사금] 실직국과 압독국 병합, 가야 김수로에게 도움을 받은 왕

 

 

1. 생애: 생년 미상~112년


2. 재위 기간: 80년~112년


3. 휘: 박파사, 박검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이사금


5. 신상정보

 

[파사이사금 당시 쌓은 마두성 위치]
[파사이사금 재임 당시 신라의 국경, 출처: KBS1 역사스페셜]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80년
매장지: 사릉원(오릉 내부로 추정)
부친: 유리이사금
모친: 사요왕의 딸
배우자: 사성부인
자녀: 1남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생년 미상으로 출생일은 확인 불가하나 신라의 3대 유리이사금의 둘째 아들로 탄생함.
2) 80년 탈해이사금이 죽은 뒤 신하들의 추대로 신라 5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적자 출신의 왕
본래 유리왕의 맏아들 일성이 즉위하게 되어 있었으나 <삼국사기>에 따르면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성이 비록 적자이기는 하지만 위엄과 총명이 파사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여 마침내 파사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라 해, 파사와 일성 사이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투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기 80년 8월에 탈해 이사금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2) 민생과 군비 체제 정비
파사 이사금은 민생을 살피고 농업을 장려하는 한편으로 군비를 가다듬는 등 체제 정비에 나섰다.
81년 음력 3월 주, 군을 돌며 위무하고 창고를 열어 구휼하며 교수형 및 참수형이 아니면 모두 용서하였다.
82년 봄 음력 1월에 영을 내려 말하였다. "지금 창고는 텅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져 있다. 만약 수재나 한재가 있거나 변방에 변고가 있으면 무엇으로써 그것을 막겠는가?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게 하고 병기를 벼리어서 뜻밖의 일에 대비하라!". 특히 군사들에 대한 군기를 확립하고 군비를 가다듬었다는 것은 사로국의 수장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가 정비되어 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사로국의 힘은 경주 일대에 머물러 있었다.

 

 


3) 축성 기록
87년에 가소성·마두성을 쌓았다. 이것은 경주를 벗어난 맨 처음의 축성 기록이다.


4) 기마전투
94년, 가야 군사가 마두성으로 쳐들어왔을 때 1,000여 명의 기병을 사용하여 이미 기마전투의 양상을 볼 수 있다.


5) 고대국가 시초
101년에 월성을 쌓아 궁실을 옮겼다. 102년에는 음즙벌국과 실직곡국 사이의 영토분쟁을 가야의 수로왕에게 부탁해 해결한 뒤에 다시 음즙벌국을 쳐서 병합하였다.
그러자 실직국과 압독국도 항복해왔다고 한다. 108년에는 다벌국과 초팔국을 합병하였다. 이러한 파사이사금의 치적에 근거해 이 왕대를 고대국가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