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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내해이사금] 아라가야, 장산성, 봉산 전쟁으로 국방체재를 점검한 왕

[한국사-내해이사금] 아라가야, 장산성, 봉산 전쟁으로 국방체재를 점검한 왕

 

 

1. 생애: 생년미상~230년


2. 재위 기간: 196년~230년


3. 휘: 석벌휴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이사금


5. 신상정보

 

 

 

[경남함양에 위치한 아라가야 아라홍련길]
[내해이사금의 도움을 받은 아라가야의 위치]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230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석이매
모친: 내례부인
배우자: 조분이사금의 누이 석 씨
자녀: 2남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벌휴이사금의 아들인 이매와 내례부인의 장남으로 탄생함.
2) 선대 벌휴이사금의 태자인 석골정과 둘째 아들 석이매가 일찍 죽고, 적손인 석골정의 아들 조분이 어렸기에 대신하여 신라 10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군정 정리
왕위에 오른 내해이사금은 진충을 일벌찬으로 임명해 국정에 참여시켰으며, 아들인 이음을 이벌찬으로 임명하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했다.


2) 가야와 우호 관계
내해이사금 즉위 때에는 가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201년 가야가 신라에 화친을 요청해왔으며, 209년 포상 8국이 아라가야를 침공해오자 신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내해이사금은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가야를 구원해 주도록 했다.
가야는 212년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오기도 했다.


3) 백제와의 전쟁
199년, 백제가 국경을 침범하였으나 자세한 기록은 없다.
214년, 백제가 요거성을 공격해 요거성주 설부를 죽이자 이음을 보내 6천여 병사로 백제를 치게 하여 사현성을 공격하였다.
218년, 백제가 다시 공격해 장산성을 포위하자 이사금이 친정하여 격퇴하였다.
222년, 백제가 우두주를 공격해 충훤이 막았으나 웅곡에서 적에 피해 홀로 도망치니 이사금이 충훤을 강직시키고 연진을 새 이벌찬으로 삼았다.
224년, 연진은 봉산 아래에서 백제와 싸워 승리하고 1천 기를 죽이고 사로잡은 뒤 음력 8월 봉산에 성을 쌓았다.

 

 


4) 국방체제 점검
백제와의 잦은 전쟁으로 내해이사금은 여러 차례 직접 변경 지역을 돌아보며 국방 체제를 점검하였다.
198년 백제와의 접경인 서쪽 지역에 홍수가 나자 피해를 입은 주와 현에 1년 동안 조세를 면제해주어 민심을 안정시켰다.
200년 알천에서 직접 군대를 사열하고, 208년에는 10일 동안 서쪽 지방을 돌아보았다.
220년에는 양산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227년에는 한 달 동안 서남쪽의 군과 읍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