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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흘해이사금] 석우로의 아들, 급리, 벽골제(지), 석씨계 마지막 왕

[한국사-흘해이사금] 석우로의 아들, 급리, 벽골제(지), 석씨계 마지막 왕

 

 

1. 생애: 생년미상~356년


2. 재위 기간: 310년~356년


3. 휘: 석흘해, 석욱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이사금


5. 신상정보

 

[신라 석씨계의 마지막 왕, 석흘해]
[흘해이사금 당시 기록에 있는 김제 벽골제]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310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각간 석우로
모친: 명원부인
배우자: 김씨
자녀: 딸의 기록은 존재하나 아들에 대한 기록은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 제11대 조분이사금의 딸인 명원부인 석씨와 신라 제10대 내해이사금의 아들 석우로 사이에서 탄생함.
2) 310년 기림이사금이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죽자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신라 제16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급리 중심의 국정 운영
왕위에 오른 흘해이사금은 급리를 아찬으로 삼아 국정을 맡기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했으며, 314년에는 그를 다시 이찬으로 삼았다.


2) 가뭄에 대한 기록
317년 봄과 여름에 크게 가뭄이 들어 죄수들을 심사해 석방하다.
318년에는 지난해 가뭄 피해를 복구하고 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전국에 백성을 부려 노역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330년 처음으로 벽골지에 물을 대기 시작하였는데, 이 둑의 길이가 1천8백 보였다고 하나 이는 백제의 기록이 잘못 기록된 것으로 추측한다.

 

 


3) 왜왕의 혼례 요청
312년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청하여옴으로 아찬 급리의 딸을 시집보내어 화친을 꾀하였다.
그러나 그 뒤 단교하였고 왜병이 풍도와 변방 민가를 약탈하고 금성까지 포위하였다.
신라군은 금성에서 농성하며 왜군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왜군의 퇴각 시점에 맞춰 기병을 내어 격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