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한국사

[한국사-실성마립간] 화백회의, 미사흔, 복호 등 인질외교 정책을 시행한 왕

[한국사-실성마립간] 화백회의, 미사흔, 복호 등 인질외교 정책을 시행한 왕

1. 생애: 생년미상~417년


2. 재위기간: 402년~417년


3. 휘: 김실성, 실주왕, 보주, 보금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마립간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근초고왕, 실성마립간]
[KBS1 드라마 근초고왕, 실성마립간]
[KBS1 드라마 광개토태왕, 실성마립간]
[KBS1 드라마 광개토태왕, 실성마립간]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417년
매장지: 실성왕릉(황남대총(소수설))
부친: 김대서지
모친: 이리부인
배우자: 아류부인, 석씨
자녀: 2녀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김알지의 후손 이찬 김대서지와, 아간 석등보의 딸인 이리부인 김씨 사이에서 탄생함.
2) 356년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의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 제18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고구려의 후원
실성이사금은 내물이사금 재임 당시 고구려의 볼모로 보내졌다.
당시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내물왕을 원망했고 그가 401년(내물왕 46)에 고구려로부터 귀국한 다음 해에 내물왕이 죽자 왕자들을 제쳐놓고 즉위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실성이사금의 왕위 계승에는 고구려의 군사적 후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2) 인질외교 정책
403년에 효과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국의 일들을 위임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왜와의 화호를 위해서 402년에 내물왕의 왕자인 미사흔을 볼모로 보내고, 412년에는 고구려와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 내물왕의 왕자인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실성왕의 인질외교는 왜와 고구려 양국과의 관계 개선 내지 관계 유지라는 대외적인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물왕의 왕자들을 외국에 볼모로 보냄으로써 내물왕계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실성왕계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3) 왜의 침공 격퇴
실성마립간은 왜와는 관계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405년에는 왕이 친히 기병을 이끌고 명활성에 침입해 온 왜병을 맞아 싸워서 300여 명을 참획하는 군사적 응징도 가하였다.


4) 눌지의 정변
실성왕은 내물왕의 태자인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이용해 눌지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정변을 일으켜서 실성왕을 살해하였다. 이 정변으로 말미암아 실성왕의 모계인 석씨세력은 김씨계에 의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