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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눌지마립간] 눌지왕, 마립간, 묵호자, 나제동맹을 체결한 왕

[한국사-눌지마립간] 눌지왕, 마립간, 묵호자, 나제동맹을 체결한 왕

 

 

1. 생애: 생년미상~458년


2. 재위 기간: 417년~458년


3. 휘: 김눌지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마립간


5. 신상정보

 

[KBS1 역사저널그날, 나제동맹]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눌지마립간이 보낸 박제상]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눌지마립간이 보낸 박제상
[복호와 미사흔을 구출한 박제상]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458년
매장지: 눌지왕릉(황남대총(소수설))
부친: 내물마립간
모친: 보반부인
배우자: 실성이사금의 딸 아로부인
자녀: 2명 이상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17대 내물마립간과 13대 미추이사금의 딸 보반부인 사이에서 적정자로탄생 함.
2) 471년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정변을 일으켜 실성마립간을 살해하고 신라 제19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삼국사기 최초 마립간 왕호 사용
눌지마립간은 <삼국유사>에는 내지왕이라고도 한다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에는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맨 처음 사용한 왕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제17대 내물마립간 때부터 그러한 왕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삼국유사>에서 마립간이 실제로는 내물왕 때 이미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 것은 종래의 왕호인 이사금이 마립간과 더불어 내물과 실성 양대에 걸쳐 혼용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 눌지의 정변
392년에 내물마립간이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는데, 401년에 귀국해 내물마립간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실성마립간은 즉위 후, 자신이 외국에 볼모로 갔던 것을 원망해 고구려를 이용, 내물마립간의 아들 눌지를 해침으로써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정변을 일으킨 눌지에 의해 살해되었고, 눌지는 실성마립간에 이어서 즉위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의 왕위 계승에 고구려의 힘이 작용한 듯하다.


3) 고구려의 영향력 배제
눌지마립간은 즉위 후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418년에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동생 복호를 고구려에서 탈출시키면서도 관계 유지를 위해, 424년에 사신을 보내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450년에는 신라의 하슬라 성주 삼직이 고구려의 변장을 살해해 고구려가 침범하자 외교적인 사과로 해결하였다.


4) 백제와의 나제동맹
눌지마립간은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의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433년에는 종래 적대적 관계에 있던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였다.
455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자 왕은 나제동맹에 입각해 군사를 파견, 백제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5) 왜와의 관계
왜와의 화호를 위해 실성마립간 때 볼모로 보내졌던 동생 미사흔도 귀국시켰다.
미사흔을 귀국시킨 뒤, 왜가 431·440·44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자 이를 모두 막아내었다.


6) 부자상속제 확립
고구려의 남진정책, 왜의 침공, 백제와의 동맹관계 등 불안한 대외적 위기상황 속에서 왕실 내부의 분쟁을 미리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의 부자 상속제를 확립시켰다.
상기 부자상속제를 바탕으로 직계인 자비마립간과 소지마립간은 혼란 없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7) 묵호자 불교 전파
눌지마립간 재임 당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고구려에서 묵호자라는 승려가 건너와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