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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소지마립간] 소지왕, 우역, 관도, 동성왕, 결혼동맹을 체결한 왕

[한국사-소지마립간] 소지왕, 우역, 관도, 성왕, 결혼동맹을 체결한 왕

 

 

1. 생애: 생년미상~500년


2. 재위 기간: 479년~500년


3. 휘: 김소지


4.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마립간


5. 신상정보

 

[EBS1 역사가 술술, 소지마립간]
[EBS1 역사가 술술, 소지마립간 재임 당시의 순장]
[백제와의 결혼동맹]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확인불가
사망일: 500년
매장지: 확인불가
부친: 눌지마립간
모친: 미사흔의 딸 김씨
배우자: 선혜부인, 벽화
자녀: 확인불가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20대 자비마립간과 서불한 미사흔의 딸 김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탄생함.
2) 479년 아버지인 자비마립간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뒤를 이어 신라 제21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고구려와 말갈 변경 침입
소지마립간 대에는 고구려가 신라의 변경 지방을 자주 공격하였다.
480년, 말갈이 북쪽을 침범하였다. 이후 신라는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481년, 소지마립간이 친히 비열성에 행차해 군사를 정비하기도 하였다.
481년, 고구려와 말갈이 함께 북쪽 변경을 침입하여 호명성 및 일곱 성을 빼앗고 미질부로 진군했다.
신라는 백제와 가야에 원군을 요청하여 고구려와 말갈을 막아냈으며, 퇴각하는 것을 이하 서쪽에서 쳐부수고 1천여를 베었다.
484년, 고구려가 다시 북쪽을 침공하여 백제군과 함께 모산성 아래에서 크게 쳐부쉈다.
489년, 고구려가 북쪽을 다시 침범해 호산성을 함락시켰다.


2) 삼년산성과 굴산성 정비
485년에는 구벌성을 쌓아 군사를 정비하고, 486년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일선 지역의 장정 3천을 징발해 삼년산성과 굴산산성을 고쳐 쌓았다.


3) 유통망 구축
487년 소지마립간은 사방에 우역을 설치하고, 국내의 기간 도로인 관도를 수리하였다.
490년에는 왕경인 경주에 처음으로 시사를 열어 사방의 물화를 유통시켰다.
이는 신라본기에 기록된 최초의 경제 진흥책이며,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경주의 방리명 확정과 아울러 족제적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육부 체제를 개편해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4) 빈민 구제
소지마립간은 비열성·일선군·날이군 등지를 순행해 병사를 위문하고 재해나 전쟁지역의 주민들을 위로해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백성들을 귀농시키기도 하였다.
소지마립간의 상기 치적은 신라본기에 기록된 최초의 실업자 대책이며, 신라의 대내적 결속력의 강화와 아울러 농업 생산력 증대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5) 백제와 결혼 동맹
493년에 소지마립간은 백제 동성왕의 결혼 요청을 받아들여 이찬 비지의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결혼 동맹을 맺었다.
그 뒤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는 신라와 백제 양국의 공수 관계가 더욱 공고해져 494년 고구려가 신라를 침입했을 때는 백제가, 495년 백제를 공격했을 때는 신라가 각각 구원병을 파견해 고구려의 남하를 강력하게 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