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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진지왕] 도화녀, 동륜태자,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왕

[한국사-진지왕] 도화녀, 동륜태자,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왕

1. 생애: 534~576년


2. 재위기간: 576년~579년


3. 휘: 김사륜, 김금륜


4. 묘호: 없음, 시호: 진지, 왕호: 왕


5. 신상정보

[MBC드라마 선덕여왕 진지왕]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진지왕릉]
[채널A 천일야사 도화녀 설화, 진지왕]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579년
매장지: 진지왕릉(경주시 서악동)
부친: 진흥왕
모친: 사도부인
배우자: 지도부인
자녀: 2남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24대 진흥왕과 박씨 사도부인 김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탄생.
2)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인 동륜이 572년 사망하는 바람에 576년 진흥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 25대 왕으로 즉위 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왕위 찬탈설
진지왕 당시 왕위 계승에서 이미 부자 상속제가 확립되어 있었다.
진흥왕의 둘째 아들인 진지왕의 경우 진흥왕의 적손, 즉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왕위 계승권자가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진흥왕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거칠부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추측은 진지왕이 즉위하던 해에 거칠부를 상대등에 임명해 국정을 맡겼고, 재위 4년 만에 정란황음을 이유로 화백회의의 결정에 따라 폐위되었으며,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지 못했던 사실에 근거한다.


2) 백제와의 전투
577년에 이찬 세종이 서쪽 변경의 주군으로 침입해 온 백제군을 일선군 북쪽에서 격파해 3,700여 명을 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내리서성을 축조해 백제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리서성으로 통하는 길은 2년 뒤에 백제가 웅현성과 송술성을 쌓음으로써 막히고 말았다.


3) 진나라와 외교관계
578년에는 중국남조의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 진흥왕 이래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4) 폐위
<삼국유사>에 의하면, 즉위한 지 4년 째 되던 해에 정사가 어지럽고 문란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하였다.
폐위되기 직전 진지왕은 도화녀를 후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도화녀가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2년 뒤 도화녀의 남편이 죽자,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에게 나타나 둘이 관계를 맺었고, 도화녀는 이후 비형을 낳았다.
한편, 위서 논란이 있는 야사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미실을 왕후로 만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던 것 때문에 미실과 사도태후가 결의하여 노리부를 앞세워 폐위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