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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일상 생활

[전라북도 남원-광한루] 춘향전의 고향 광한루 방문 후기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난리통이다.

20일 오후 4시 발표 기준

서울: 15명
인천: 1명
경기도: 12명
전북: 1명
전남: 1명
광주: 2명
대구.경북: 70명
기타 우한교민:2명 확진자 포함 Totall 104명


대구/경북의 경우 코로나 청정지역에서 신천지 여파로 현재 봉쇄령 청원까지 요구하고, 청도에서 국내 최초의 사망자까지 나왔다. 지금 대구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가게에는 손님 발걸음이 줄고 감염을 우려하는 직장인들은 배달 및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공공기간도 상당수 폐쇄한 상태이며, 대형마트 및 식자재마트의 생필품이 동나고있단다. 이 사단이 제발 빠른시일내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대구/경북에서 더이상 다른 광역시도로 감연자가 퍼지지 않기를 바라며 전라북도 광한루 방문 후기를 소개한다.

광한루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춘향전의 애뜻한 스토리를 기억 할 것이다.

광한루는 조선 초 3대 정승 중 하나였던 황희 정승이 유배 도중 세운곳이다. 역시 양반은 양반이다 ㅋ 유배중에 건물도 세우고 :)

1491년 황희 정승이 양녕대군의 폐출불가를 주장했는데, 태종의 노여움을 사면서 남원으로 유배를 가게되면서 이 누각을 올렸다고한다.

초기 명칭은 '광통루'였는데? 후에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명칭을 광통루에서 광한루로 변경하며 오늘날까지 '광한루'로 남게되었다.

[광한루원 지도- 클릭시 지도 이동]

광한루는 '광한청허부'를 의미한다. 그 뜻을 풀어내면 '넓고 차갑고 맑고 빈곳'이다. 참 우리의 선비님들은 간지나게 작명도 잘하신다. 근데 왜 너님들 사노비 이름은 죄다 먹쇠, 돌쇠...?? (쇠를 좋아하나 허허허)

광한루는 후에 두번의 아픔을 겪었다. 그 시련을 만든 원인은 아베, 아니 일본이다.

1) 정유재란: 1597년 정유재란때 한번 불타면서 1638년 남원부사가 재건 시작.
2) 일제강점기: 선비의 기상이 담긴 광한루를 재판소 및 감옥으로 사용.

예나 지금이나 참 일본놈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일본 회사를 다니고있는 슬픈현실)

광한루는 조선의 4대 누각중 하나다.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평양 부벽루, 남원 광한루가 4총사인데 지금 평양 부력루는 통일 전까지는 볼 수 없다.

4대 누각중 광한루는 조선 후기 때부터 소설 및 판소리의 소재가 되면서 이 당시부터 충향전의 배경으로 유명세를 타며 지금까지도 많은 젊은 연령층과 로맨티스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자리잡고있다.

사진을 보면 점점 어두워지고있다ㅎㅎ

당시 봄이 오기 전 2월 말경 4시 정도에 방문했는데 해가 정말 빠르게졌다. 추운 겨울보다는 여름에 올 때가 더 예쁘다고 하기에 다음에는 초 여름 재 방문 계획이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봤던 쾌걸춘향 생각도 조금 났다. (중학교 3학년??) 유배당시 만든 건물치고는 복구를 잘해서 그런지 그 규모가 상당했다.
그리고 공터가 많고 광한루 맞은편 큰 강이 있기에 바람이 겁나 많이 불기에 정말 추웠다. 혹시 늦가을이나 겨울에 방문하게 된다면 단단히 준비하시고 가시길~!

개장시간은 하절기 동절기 모두 다르다.
원칙은 유로이고 무료시간도 있으나 참고 하기 참조 :)

하절기: 08:00 ~ 19:00 (유료), 19:00 ~ 21:00 (무료)
동절기: 08:00 ~ 18:00 (유료), 18:00 ~ 20:00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