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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신문왕]김흠돌. 국학, 녹읍폐지, 감은사지, 9서당, 강력한 전제왕권의 왕

[한국사-신문왕]김흠돌. 국학, 녹읍폐지, 감은사지, 9서당, 강력한 전제왕권의 왕

 

 

1. 생애: 생년미상~692년


2. 재위 기간: 681년~692년


3. 휘: 김정명


4. 묘호: 없음, 시호: 신문, 왕호: 왕


5.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692년
매장지: 신문왕릉(경주시 배반동)
부친: 문무왕
모친: 자의왕후 김씨
배우자: 폐비 김씨, 신목왕후
자녀: 4남

 

[감은사지 3층석탑]
[KBS1 드라마 대왕의 꿈, 신문왕]
[신문왕릉, 경주시 배반동]
[TvN 어쩌다어른, 신문왕]
[통일신라 9주 5소경 지도]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 30대 왕 문무왕과 자의왕후 김씨 사이에서 적장자로 탄생.
2) 665년 문무왕 5년에 태자로 봉해졌음.
3) 681년 가을 문무왕이 죽은 뒤에 그 뒤를 이어 신라 제31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김흠돌의 모반
신문왕이 즉위하던 해, 왕의 장인인 김흠돌을 비롯한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이 모반을 일으켰으나 전제왕권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였기에 모두 평정되었다.
이 사건에는 많은 귀족이 연루되었는데 신문왕은 주동자뿐만 아니라 말단 가담자까지도 철저하게 숙청하였다.


2) 전제왕권 확립
신문왕이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귀족세력을 철저하게 탄압하였으며,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전제왕권의 확립을 꾀하였다.
이러한 신문왕의 의지는 두 차례에 걸쳐 전국에 반포된 교서에 잘 반영되어 있다.
682년에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도 위의 모반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만파식적에는 김흠돌의 반란과 같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전제왕권하의 신라의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3) 국학 설립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인재교육과 양성을 목적으로 국학을 설립하고 여기에 경 1인을 두었다.
진덕여왕대에 이미 국학에 소속된 대사라는 관직을 설치함으로써 국학 설립을 위한 준비가 착수되기 시작했고 신문왕대에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되었다.

 

 


4) 봉성사 망덕사 준공
신문왕은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685년에는 봉성사와 망덕사를 준공하기도 하였다.
신문왕대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늘어난 중앙관서의 업무와 영역이 확대된 지방통치를 위한 제도 정비도 이루어졌다.


5) 중앙 관부 개편
682년에 위화부령 2인을 두어 인재 등용에 관한 업무를 관장했다.
또 공장부감과 채전감 각각 1인을 두었으며 686년에는 예작부경 2인을 두었다.
687년에는 음성서장을 경으로 올리고 688년에는 선부경 1인을 더 두어 늘어난 중앙 관부의 업무를 처리하게 하였다.
특히 685년에는 각 관부에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사지가 설치됨으로써 문무왕대에 설치된 말단 행정 담당자인 사와 함께 영·경·대사·사지·사의 5단계 관직제도가 완성되었다.


6) 5소경제 정비
지방 통치제도의 경우 689년에 왕경을 지금의 대구인 달구벌로 옮기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왕경의 편재에서 오는 불편함을 극복해 위하여 685년에 서원소경과 남원소경을 설치했다.
한편 진흥왕대에 설치된 국원소경을 중원소경으로 바꿈으로써 5 소경제를 정비하였다.

 

 


7) 9주제 완성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설치해 온 군정적 성격의 주도 685년 완산주와 청주를 설치함으로써 삼국통일 후 영토의 효과적 지배를 위한 9 주제를 비로소 완성하였다.
686년과 687년에는 여기에 따른 주·군·현을 정비하였다.


8) 9서당 완성
중앙의 군사조직의 경우 신라인을 중심으로 고구려·백제·보덕 국 및 말갈인을 두루 포섭하여 9 서당을 완성하였다.


9) 녹읍 폐지
내외의 관제 정비와 동시에 689년에는 관리에게 녹봉으로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세조를 차등 있게 지급해 관리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것은 녹읍을 통한 관리들의 경제력 확대를 억제시킴으로써 전제왕권을 보다 강화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10) 5묘제 확립
신문왕은 687년에 직계 조상인 태조대왕·진지대왕·문흥대왕·태종대왕·문무대왕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중대 왕실의 정통성을 수립하는 5 묘제를 확립하였다.
이는 중국 제후의 5 묘제를 본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