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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진덕여왕] 비담의 난 진압, 한화정책, 영휘, 집사부를 설치한 여왕

[한국사-진덕여왕] 비담의 난 진압, 한화정책, 영휘, 집사부를 설치한 여왕

 

 

1. 생애: 생년미상~647년


2. 재위 기간: 647년~654년


3. 휘: 김승만


4. 묘호: 없음, 시호: 진덕, 왕호: 여왕


5. 신상정보

 

[KBS1 드라마 대왕의 꿈, 진덕여왕]
[경주시 현곡면에 위치한 진덕여왕릉]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647년
매장지: 진덕여왕릉(경주시 현곡면)
부친: 김국반
모친: 월명부인 박씨
배우자: 알천
자녀: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 26대 왕 진평왕의 동생 진안 갈문왕 김국반과 월명부인 박씨 사이에서 탄생.
2) 647년 사촌인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28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비담의 난 진압
즉위하던 해 647년,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을 비롯한 30인을 붙잡아 처형하고, 알천을 상대등에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다.


2) 청병 외교와 숙위 외교
진덕여왕이 즉위하면서부터 고구려와 백제는 계속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왔다.
이에 신라는 압독주 군주이던 김유신을 중심으로 백제의 공격을 막는 한편 648년에는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냈다.
이로써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청병외교와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숙위외교를 전개하였다.


3) 한화정책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외교활동을 벌인 결과, 신라는 지금까지 신라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던 당나라 태종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김춘추 일파의 주도 아래 당나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모방한 대규모 정치개혁이 단행되었다. 이것을 이른바 한화정책이라고 한다.


4) 당나라 정치적 예속
649년 의관을 중국식으로 하는 중조의 관제를 실시하였다.
650년에는 즉위 직후부터 사용하던 독자적 연호인 태화를 버리고 당나라 고종의 연호였던 영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당나라에 대한 신라의 정치적 예속도가 강화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을 상징한다.


5) 여왕 지지세력의 정치개혁
651년에 백관 왕에 대해 행하는 정조하례제를 실시하였다.
또 종래의 품주를 개편하여 국왕 직속의 최고 관부로서 집사부를 설치하고, 품주의 본래 기능은 신설된 창부로 이관하였다.
파진찬 죽지를 승진시켜 집사부의 수장 중시를 삼고 기밀 사무를 맡겼다.
이는 토착 기반을 가진 귀족들의 정서를 인지하거나 주변국의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던 선덕여왕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귀족세력을 배제하고 김춘추를 포함한 여왕 지지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정치개혁이었다.
또, 시위부를 개편했는데,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김유신의 군사력이 주축이 되어 개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