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한국사

[한국사-효성왕] 노자도덕경, 영종의모반을 평정한 왕

[한국사-효성왕] 노자도덕경, 영종의모반을 평정한 왕

 

 

1. 생애: 생년미상~742년


2. 재위기간: 737년~742년


3. 휘: 김승경


4. 묘호: 없음, 시호: 효성, 왕호: 왕


5. 신상정보

 

 

 

[효성왕때 당나라에서 들어온 도덕경]
[효성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터]

 


출생일: 생년미상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742년
매장지: 효성왕릉(경주시 낭산 기슭 황복사터 부근 경작지)
부친: 신문왕
모친: 소덕왕후 김씨
배우자: 혜명부인
자녀: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33대 왕 성덕왕과 소덕왕후왕후 김씨 사이에서 탄생.
2) 715년(성덕왕 14)에 태자로 책봉.
3) 737년 부친인 성덕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신라 제 34대 왕으로 즉위 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사정부 및 좌우의방부 변경
효성왕은 즉위하면서 사정부(司正府)의 승(丞)과 좌우의방부(左右議方府)의 승을 모두 좌(佐)로 바꿨다.
이것은 ‘승(丞)’자가 왕의 이름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2) 당나라 외교 관계 강화
전 왕인 성덕왕 때에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외교적 통로를 이용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특히, 738년에 당나라 사신 형숙이 신라에 올 때 당나라 현종이 그에게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고 일러준 것을 보아, 당시 신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3) 노자도덕경
당나라 사신 형숙은 『노자도덕경』을 비롯한 서책을 왕에게 바쳤다.
여기서 신라의 선진문물에 대한 수용자세를 엿볼 수 있다.

 

 


4) 영종의 모반
740년에는 파진찬 영종의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모두 평정되었다.
반란의 원인은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이 되어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왕비가 시기하여 그의 족당과 더불어 후궁을 모살한데 있다.
이에 영종이 왕비의 족당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이를 보면 단순한 여인들의 투기가 정치적 반란을 유발한 것 같으나, 실제는 성덕왕대에 전성을 구가하던 중대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부터 축적되었던 정치적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것은 전제왕권 하에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이 왕권의 약화를 틈타 다시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