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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혜공왕] 김양상, 김융, 염상, 김경신, 중대신라 마지막 왕

[한국사-혜공왕] 김양상, 김융, 염상, 김경신, 에멜레종설화, 중대신라 마지막 왕

 

 

1. 생애: 742~780년


2. 재위기간: 765년~780년


3. 휘: 김건운



4. 묘호: 없음, 시호: 성덕, 왕호: 왕


5. 신상정보

 

[혜공왕때 완성한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을 본뜬 신라대종]

 

 

[혜공왕 당시 중대신라 지도]

 


출생일: 742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780년
매장지: 소재 파악 불가
부친: 경덕왕
모친: 만월부인 김씨
배우자: 신보왕후, 창창부인
자녀: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 35대 왕 경덕왕과 만월부인 김씨 사이에서 적정자로 탄생.
2) 760년(경덕왕 19)에 태자로 책봉.
3) 765년 경덕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신라 36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신라 중대 왕실 마지막 왕
혜공왕은 태종무열왕의 직계손으로 계승된 신라 중대 왕실의 마지막 왕이다.
즉위했던 때의 나이가 8세였으므로 왕태후가 섭정하였다.


2) 정치적 반란사건
전제왕권의 견제하에 있던 귀족세력들이 정치일선에 등장해 정권 쟁탈전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였다.
따라서 혜공왕의 재위 16년 동안에는 많은 정치적 반란사건이 있었다. 먼저 일길찬 대공과 그의 동생 아찬 대렴이 768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의 측근 인물인 이찬 김은거를 비롯한 왕군에 의해서 토멸되었다.
이 반란은 경덕왕에 이어서 중대의 전제왕권 체제를 유지하려는 혜공왕 초년의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려는 최초의 정치적 움직임이었다.
770년에는 대아찬 김융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도 대공의 반란과 마찬가지로 반혜공왕적 성격을 띠었다. 이로 인해 김은거가 시중에서 물러나고 이찬 정문이 임명되었다.
혜공왕대의 정치적 사건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774년 김양상이 상대등에 임명된 사실이다.
즉, 김양상은 경덕왕대에 시중을 역임했으나, 768년에 있었던 대공의 난에 연루되어 시중직에서 물러나고 왕의 측근인 김은거에게 시중직을 물려주었다.
이것은 전제왕권 중심의 중대 사회에서 귀족 중심의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775년에는 김은거 및 이찬 염상과 정문의 모반이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제왕권 유지를 지지하는 세력으로서 귀족세력인 김양상의 대두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진압됨으로써 김양상 중심의 정치세력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


3) 관제 개혁 취소
경덕왕 때 관제 개혁이 있었는데 혜공왕 때 상대등 김양상, 이찬 김경신 등의 대신들의 주도로 관제 개혁을 모두 취소하였다.


4) 혜공왕 살해
삼국사기에는 780년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나 혜공왕이 난의 과정에서 살해당했다고 하였는데, 시해한 인물이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야사 삼국유사에는 혜공왕이 김양상, 김경신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무열왕계의 직계이기에 황통은 단절되었다.
혜공왕의 치세의 종말과 더불어 중대 신라는 끝나며 신라를 왕위 투쟁과 호족의 난립으로 엉망이 되는 끝없는 혼돈으로 몰아넣게 되는 하대 신라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