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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원성왕] 독서삼품과, 벽골제, 봉은사, 김주원과 왕위 경쟁한 원성왕릉의 주인

[한국사-원성왕] 독서삼품과, 벽골제, 봉은사, 김주원과 왕위 경쟁한 원성왕릉의 주인

 

 

1. 생애: 생년미상~798년


2. 재위 기간: 785년~798년


3. 휘: 김경신



4. 묘호: 없음, 시호: 원성, 왕호: 왕


5. 신상정보

 

 

 

[원성왕과 왕위 계승을 다툰 김주원]
[원성왕대에 만든 독서삼품과]
[유학을 장력한 원성왕]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원성왕릉]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798년
매장지: 원성왕릉(경주시 외동읍)
부친: 김효양
모친: 계오부인 박씨
배우자: 숙정부인
자녀: 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 17대 왕 대물마립간의 12대손으로, 일길찬 김효양과 계오부인 박씨 사이에서 탄생.
2) 65대 혜공왕때에 이찬의 직위에 있다가, 780년 상대등 김양상과 함께 이찬 김지정의 반란을 진압.
2) 785년 선덕왕이 병으로 죽자 그 뒤를 이어 신라 38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김지정의 난 진압
원성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780년, 뒷날 선덕왕이 된 김양상과 더불어 김지정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때 혜공왕을 살해하고 김양상이 왕위에 오르는데 기여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는 김양상과 밀착된 인물로서 경덕왕 이래 왕실의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혜공왕 말기의 혼란을 평정한 공으로 780년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2) 김주원과의 왕위 다툼
선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태종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과의 왕위 다툼에서 승리하여 즉위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김주원과의 왕위 계승다툼에 대한 설화를 전하고 있다.
당시 김주원은 김경신보다 왕위계승 서열이 높았다. 김경신은 복두를 벗고 소립을 쓰고 12현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가는 꿈을 꾸자, 여삼의 해몽을 듣고 비밀리에 북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3) 총관을 도둑으로 변경
785년 원성왕은 총관을 도독으로 바꾸었다.

 

 


4) 독섬삼품과 설치
원성왕은 788년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였다.
독서삼품과는 유교 경전에 능통한 사람을 3품으로 나누어 실력에 따라 관리로 등용한 것으로, 이러한 개혁은 국학을 설치한 지 이미 1세기가 지난 당시 신라사회에 있어서 무예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관리등용법의 개혁이 요청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5) 왕실 친족 집단원 권력 장악
원성왕대는 하대 권력구조의 특징을 이루는 왕실 친족 집단원에 의한 권력 장악의 전형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즉, 원성왕은 즉위와 동시에 왕자 인겸을 태자로 책봉하여 다음의 왕위계승권자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791년 인겸태자가 죽자, 그 이듬해 8월에는 왕자 의영을 다시 태자로 책봉하였다.
다시 793년 2월 의영태자가 죽자, 인겸태자의 맏아들인 준옹을 이듬해 1월 태자로 책봉하였다.
태자로 책봉된 준옹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인 언승주도 정치의 중심부에서 활약하였는데, 이처럼 왕과 태자를 정점으로 한 극히 좁은 범위의 근친 왕족들이 상대등·병부령·재상 등의 요직을 독점하고자 하였다.
하대는 이들 근친 왕족들에 의하여 왕위가 이어져 원성왕계로 특징지어진다.


6) 신공사뇌가
786년에는 대사 무오가 병법 15권과 화령도 2권을 바쳤으며 왕 자신도 [신공사뇌가]를 지었다.
그것은 인생 궁원의 변화에 대한 이치를 담은 것이라 한다.

 

 


7) 제공의 난 진압
791년에 제공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제공은 785년에 시중이 된 인물로 그가 일으킨 반란의 성격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8) 봉은사, 망덕루 창건
원성왕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785년에 승관을 두어 정법전이라 하고, 795년에는 봉은사를 창건하였으며, 망덕루를 세웠다.


9) 벽골제 증축
790년 별골제를 증축하였다.

 

 


10) 발해와의 통교
원성의 치적으로 발해와의 통교를 들 수 있다. 당시 원성왕은 상당한 독자외교를 펴고 있었다.
이는 795년에 당나라의 사신이 하서국 사람 둘을 데리고 와 신라의 호국룡을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잡아가려는 것을 막았다는 설화에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