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한국사

[한국사-민애왕] 청해진, 김균정, 김명, 안록산의난, 반란으로 왕이된 남자

[한국사-민애왕] 청해진, 김균정, 김명, 안록산의난, 반란으로 왕이된 남자

1. 생애: 817~838년


2. 재위기간: 838년~839년


3. 휘: 김명


4. 묘호: 없음, 시호: 민애, 왕호: 왕


5. 신상정보

[KBS1 역사저널 그날, 민애왕]
[KBS2 드라마 해신, 민애왕]
[민애왕릉]


출생일: 817
출생지: 신라 서라벌
사망일: 839년
매장지: 민애왕릉(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부친: 김충공
모친: 귀보부인
배우자: 윤용왕후 김씨
자녀: 기록없음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의 증손자로, 대아찬 김충곤과 귀보부인 박씨의 아들로 탄생.
2) 835년 김우징을 대신해 시중으로 임명.
2) 838년 이홍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을 자결하게 만들고 스스로 신라 제 44대 왕으로 즉위함.


7. 주요 업적 및 삶
1) 스스로 왕이된 남자
흥덕왕 사망 이후, 왕위계승 분쟁은 김제륭(희강왕)-김명(민애왕)의 제휴세력과 김균정-김우징(신무왕) 부자 사이의 대립이었다.
이는 원성왕의 아들 중 인겸계와 예영계의 다툼이자 좁게는 원성왕의 손자인 김충공, 김헌정, 김균정 가계 사이의 분쟁으로도 본다.
이 싸움에서 김균정은 전사하고 김양이 화살에 맞아 김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도망해 의탁하였다.
김균정-김우징 세력이 타도된 이후 김제륭이 희강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실질적인 정치의 주도권은 김명-이홍에게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에게 불만을 가진 김명이 이홍과 함께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자진하고 김명이 왕위에 올라 민애왕이 되었다.


2) 균정계 세력의 도전
민애왕은 즉위하자마자 곧장 균정계 세력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838년 청해진에 의탁하고 있던 김우징 등이 장보고의 군사 5,000명을 이끌고 민애왕을 토벌하기 위해 진격해 왔다.
장보고는 신라 흥덕왕 3년 해적을 토벌하고자 한다는 청원을 하여 승낙받음으로써 지금의 완도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기에 이르렀고, 해상무역을 통한 경제력과 아울러 1만에 달하는 강한 군사력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신라 혜공왕 이후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진 신라 국내 정황과 당의 안록산의 난 이후 당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신라와 당 사이의 해상무역을 독점하며 세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김우징은 장보고의 청해진세력에 의탁하여 민애왕을 내쫓고 왕이 되고자 하였다.
이때 청해진에서 김양·염장·장변·정년·낙금·장건영·이순행 등 장수들이 김우징을 받들고 있었다.


3) 청해진 세력과의 전투
민애왕은 김민주 등을 파견해 무주 철야현에서 토벌군을 맞아 싸우게 했으나 패배하고, 다음 해인 839년 1월 달벌에서의 싸움에서도 대패하였다. 그러자 민애왕은 월유댁으로 황급히 도망갔으나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