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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한국사-현종] 두 차례 예송논쟁에 휩싸인 외국 출생 임금, 현종의 업적

 

[한국사-현종] 두 차례 예송논쟁에 휩싸인 외국 출생 임금, 현종의 업적

 

1. 생애: 1641년~1674년


2. 재위 기간: 1659년 ~ 1674년


3. 휘: 이연


4. 묘호: 현종


5. 신상정보

 

[MBC 드라마 마의-현종]
[MBC 드라마 마의-현종]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살다-현종]
[KBS2 드라마 장희빈-현종]

출생일: 1641년 3월 14일
출생지: 청나라 선양
사망일: 1674년 9월 17일 (33세)
매장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동구릉
부친: 효종
모친: 인선왕후
배우자: 명성왕후
자녀: 4명(1남 3녀)


6. 출생 및 즉위 과정

 

1) 1651년 조선 제17대 왕 효종(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마무를 당시 심양에서 태어남.
2) 1646 소현세제가 죽고 아버지 봉림대군이 왕세사로 책봉되었으며, 1649년 왕세손 책봉되었다가 효종이 즉위한 후 왕세자로 책봉.
3) 1659년 아버지인 효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조선 제18대왕으로 즉위.


7. 주요 업적 및 삶

 

1) 예송논쟁
현종 시대에는 상복 문제를 두고 두 차례의 '예송'이 일어났는데 국왕의 정통성과도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쟁이 심했다.
사기 '예송논쟁'은 임진왜란 이후 약해진 양반의 권한과 특권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기도하다.


2) 기해예송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제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은 계모가 아들의 상중에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충돌하였다.
남인은 3년상, 서인은 1년상을 서로 주장하였고,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 '자의대비'가 장자를 대상으로 하는 3년상의 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서인의 1년상이 채택되었다.


3) 갑인예송
1647년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자 '자의대비'가 며느리의 상중에 상복을 얼마 동안 입을 것인가를 두고 다시 '예송논쟁'이 발생되었다.
'서인'은 기년복(1년복)으로 정했다가 대공복(9개월 복)으로 수정하자, '남인'은 대공복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기년복(1년복)을 주장하였다.
이때 현종은 서인의 주장을 물리치고 남인의 기년복을 채택하여 서인 정권이 무너지고 남인이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현종은 두 번 다시 예송과 관련된 논쟁을 벌일 시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였고, '숙종'이 '경신환국'을 일으키기 전까지 6년간 남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4) 훈련별대 창설
현종은 효종대에 계획한 청나라에 대한 보복 정벌인 북벌을 국제관계와 국내 사정으로 중단하는 대신 군비에 힘써 1699년 '훈련별대'를 창설하였다. 이 '훈련별대'는 훈련도감 소속의 군대를 감축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로 임금의 호위와 서울 방어의 임무를 맡았다.


5) 정치 개혁
1662년 호남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1668년 동철활자 10여 만자를 주조했으며, 혼천의를 만들어 천문관측과 역법 연구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지방관의 상비법을 제정했고 동성통혼을 금지시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왕조실록, 위키페디아 참조]